[수필] 살만한 세상을 위한 제안
이른 아침 산책을 나서면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. 개를 산보시키러 나온 것인지, 아니면 개가 사람을 따라 나온 것인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동물과 사람이 함께 아침을 누리고 있으니 참 좋은 일이다. 우리네 한국 사람들은 길에서 남의 개를 만나면 우선 조심부터 한다. 뇌리에 개는 본래 집을 지키는 사나운 녀석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일 게다. 그런데 여기 개들은 덩치와는 상관없이 모두 순해서 참 좋다. 개도 사람을 닮는다고 하더니만, 캐나다나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더 온순하고 순둥이들인지…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, 개를 유심히 보노라면 그 모습이나 걷는 모양이 어째 그리 주인을 많이 닮았을까! 오랫동안 함께 음식과 마음을 나누고 삶을 공유하며 교감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. 산보 중에 맞은편에서 개가 다가오면, 나는 으레, 그 녀석 참 예쁘게 생겼다고, 혹은 참 영리하게 생겼다고 인사를 건넨다. 물론 기쁘자고 하는 인사다. 그런데 개 주인 치고 자기 개 예쁘다는 말을 무심코 흘려듣는 사람은 지금까지 못 봤다. 자기가 예쁘다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도 좋은지! 처음 보는 사람도 거의 예외 없이, 마치 그런 칭찬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기나 했다는 듯이, 가던 길을 멈추고 침이 마르도록 자기 개 자랑을 한다. 사실 들어보면 별 특별한 것도 아니고, 대부분의 개가 영리하고 충성스럽고 사랑스러운 것인데 말이다. 하기야 사람도 자기 새끼가 제일 예쁘다고 했다, 굳이 고슴도치까지 불러오지 않아도… 그런데, 서양 사람들이 왜 그리들 개를 좋아할까? 꼭 자기 자식처럼 위하고 아끼니 말이다. 물론 귀엽게 생긴 녀석들도 있고, 충직하고 사회성이 특히나 발달한 개들도 있다. 그러나 어떤 경우는, 물론 주인에게 절대 얘기하지는 않지만, 그 개가 좀 더 예쁠 수도 있겠다, 혹은 좀 더 영리할 수도 있겠다 싶은 녀석들도 있다. 그래도 그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개를 최고로 알고 귀히 여긴다. 사람이 개에게 왜 그리 애정을 쏟고 정성을 들이는 것일까. 여러 얘길 할 수 있겠지만, 혹시, 보편화된 핵가족 제도, 좀 더 잘살아보겠다고 저마다 바쁘게 뛰다가 잃어버리고 망가진 관계들, 피차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상실감, 애틋한 정서에 대한 갈망, 이런 것들에 대한 반작용이 순진하고 충직해 뵈는 개에게 더 애착을 두게 하는 것은 아닐까? 인간 대용품이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, 한편으로는 좀 씁쓸한 기분이다. 우리의 아픈 현실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것 같아서 그렇다. 한국에서의 이야기다. 미국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두 친구를 위한 환영회가 있었다. 어떤 동료가 짓궂은 말을 했다. “오래 나가 있었으니 이제 접시 닦는 일에는 익숙해졌겠구먼! 그런데 자네도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아내에게 I love you라고 하나?” 잠시 뜸을 좀 들이더니 그 친구 이렇게 말한다. “그게 모두 다 로맨틱한 것만은 아니더라고. 처음에는 근사해 보이더니, 제일 이혼율이 심한 나라도 그 나라더라고. 그리고 돌아서면 그냥 아주 남이야. 헤어지면서 상처를 입기나 하는지 모르겠어. 그동안 날마다 입버릇처럼 읊어 대던 그 I love you가 진실이었었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고!...” 하는 것이다. “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익숙해서 어느덧 부부간에도 사실은 마음 놓고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불안한 심리의 표출인지도 모르지... 자기가 I love you라 표현하면서 상대의 사랑도 수시로 확인해야만 마음이 놓여서 그럴 수도 있고…” 물론 그는 자기의 사견이라 전제를 했지만, 난 온종일 씁쓸함을 떨칠 수 없었다. 곰곰이 되씹어볼수록 일리가 있는 분석인 것 같아서 그랬다. 그렇다.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한없이 외롭고 지친 인간들이다. 따지고 보면 사람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가련한 존재들이다. 모두 간신히 살아가고 있다. 그래서 조그만 격려나 위로라도 절실하다. 기댈 수 있는 언덕들이 있으면 좋겠다. 피차 용기를 북돋우는 것이 매우 요긴하다. 우리가 다 아는 얘기다. 조금씩 북돋우고 받쳐주면 우리 세상이 훨씬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…. 그래, 격려, 사랑한다는 말이 그립다. 오늘 당신이 참 우아해 보인다, 옷매무새가 아주 세련되었다, 난 네가 참 좋다, 한 주일 보고 싶었다,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, 파트락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,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, 오늘 말씀 감사했습니다.... 어느 것이라도 좋다. 어쩌면 잘 안 해보던 일이어서 어색하기도 하겠지만, 그래도 한번 해보자, 미루지 말고 오늘부터, 널 위해서 날 위해서. 그럼 세상이 달라진 댄다. 유진왕 / 수필가수필 제안 파트락 음식 박사학위 과정 한국 사람들